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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개설]
노강진은 평안남도 용강군 삼화면(현 안주군 연호면 서흥리)에 설치된 수군진이다. 노강은 선사포(宣沙浦)·광량(廣梁)과 함께 삼포(三浦)라 불린다. 본래 노강진은 평안남도 안주성을 방어하는 데 주력하였고, 조선 선조 때 평안도와 함경도의 세곡을 강화도로 운송하는 업무를 담당하였다.
[설립 경위 및 목적]
노강에 수군진이 언제 설치되었는지 정확하게 확인되지는 않는다. 다만 조선 성종 때 형조에서 각 지방 부역에 동원된 사람들을 발표하였는데, 이때 노강진에 방직산(方直山)과 안민손(安敏孫)이 배정된 것이 확인된다[『성종실록』7년 1월 21일]. 이로써 보건대 노강에 수군진이 설치된 것은 1476(성종 7) 이전으로 추정된다. 삼포를 대표하여 노강에 수군진을 설치한 것으로 추정된다.
[조직 및 역할]
15세기 노강·선사포·광량 삼포에 주둔한 수군의 규모는 2,683명으로 확인된다[『성종실록』16년 10월 25일]. 조선전기 노강진의 기능은 안주목 방비와 각종 부역이었다. 즉 1485년(성종 16)에 노강진 소속 수군 200명이 안주목에 저장된 미곡의 수량을 파악하였으며, 안주읍성 보수와 둔전(屯田)을 경작하는 데 차출되었다[『성종실록』16년 2월 5일][『성종실록』16년 10월 24일].
16세기 말엽 임진왜란을 당하여 명에서 원정군이 조선으로 이동하였다. 이때 노강진 소속 수군들이 평안도 용강(龍岡)과 삼현(三縣) 등지의 곡식 600여 석을 모아 명나라 군사에게 지급하였다[『선조실록』 25년 7월 6일].
17세기에는 노강진 소속 수군이 바다나 큰 강에서 도적질을 하는 수적(水賊)을 방비하였다[『인조실록』5년 8월 16일].
[변천]
15세기에 창설된 노강진은 주로 평안남도 안주성을 방비하는 데 주력하였다. 그러나 16세기에 노강진성이 무너지고 폐허로 변하였다[『명종실록』 9년 10월 22일]. 1630년(인조 8)에 노강을 비롯한 선사포와 광량포에 거진(巨鎭)을 설치하여 바다를 방비하자는 논의가 있었으나 실행되지 않았다[『인조실록』 8년 8월 3일]. 마침내 1635년(인조 13)에 노강진이 복원되고, 1636년에 수군첨사가 파견되었다[『인조실록』13년 9월 27일].
1872년에는 노강진에 수군첨절제사가 주둔하였으며, 방패선(防牌船)·병선(兵船)·사후선(伺候船)·급수선(汲水船) 등 총 다섯 척의 전투용 배가 배치되었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