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.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. ※자료문의 : 한국학중앙연구원 031-730-2705
[내용]
1409년(태종 9) 3월 사헌부(司憲府)에서 세포전(稅布田), 문묘배향(文廟配享), 여자의 의복 제도 등에 관한 시무를 올리면서 구습을 따르는 여자의 의복 제도 중 오군과 입모(笠帽)는 존귀한 것이며, 대소부녀(大小婦女)의 종비(從婢)가 오군을 입는 것을 금하였음을 알 수 있다[『태종실록』 9년 3월 19일]. 오군(襖裙)은 말군(襪裙)이라고도 하는데, 말군으로 표기된 것은 세종 때부터인 것으로 보인다. 1429년(세종 11) 2월에 사헌부에서 광화문에 붙인 계의 내용 중에 대소 부녀를 수종하는 여종은 말군을 입지 못한다는 것이 포함되어 있으며[『세종실록』 11년 2월 5일], 1457년(세조 3) 6월에 조숙생(趙肅生)의 처가 말군을 입지 않고 말을 타 기생으로 오해받았다[『세조실록』 3년 6월 10일]는 기록을 보면, 신분과 용처가 분명하였으나 잘 지켜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.
1603년(선조 36) 의창군(義昌君)이 아내를 맞는 것을 5월로 정하면서 혼수에 필요한 의복과 함께 말군감으로 쓸 화문백단(花紋白緞) 1필을 요동에서 사오게 했다[『선조실록』 36년 3월 18일]는 것으로 보아 말군에는 고급의 옷감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. 조선시대 연향에 여기(女妓)와 연화대무(蓮花臺舞)를 추는 동녀(童女)가 착용한 말군의 형태는 『악학궤범(樂學軌範)』의 악공복(樂工服)과 관련된 내용에서 확인할 수 있다.
[용례]
我朝女服之尊者 襖裙與笠帽也 而主婦從婢上下 皆用黑羅帽白綃裙 非惟價重財費而已 尊卑混而貴賤雜矣 願自今大小婦女從婢之服 不許襖裙 其笠帽則只用苧布 不許羅綃 其帽襜長短 不與主婦笠帽相等 則市價省而上下辨矣[『태종실록』 9년 3월 19일].